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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현과 인연이 있는 예술가를 만나는 인터뷰, 이번에는 오카모토 신스케 씨입니다. 오카모토 씨는 주목받는 신예 작곡가로, 저희 단체의 작곡 강습회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처음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학원생이 되기까지, 어떻게 음악을 공부해 오셨나요?

처음 음악을 배운 것은 다섯 살 무렵으로, 동네의 일렉톤 전자 오르간 교실에 다녔습니다. 친한 친구가 다닌다는 이유로 저도 배우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음악에 특별한 애착이 없어서 아홉 살 무렵 다른 활동을 우선하기 위해 일렉톤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뒤로 한동안 음악과 인연 없는 생활을 하다가, 열두 살 무렵 우연히 드뷔시의 피아노곡을 접했습니다. 그 곡들에 매료되어 저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온 마음을 다해 음악에 몰두했고, 중학생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작곡도 독학하게 되었습니다. 작곡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로, 지역 대학의 선생님께 지도를 받았습니다. 대학 입시에서는 가정 형편상 재수를 할 수 없었고, 본가에서 비교적 가까운 국공립대학에만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물러설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금도 재학 중인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부에서는 정말 다양한 것을 배웠습니다. 에크리튀르, 즉 음악을 쓰는 기초 기법부터 모든 시대의 작곡법과 악기법까지, 배울 것이 너무 많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학부생으로 오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음악을 더욱 구조적이고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싶어져, 석사과정은 음악학 전공으로 진학했습니다. 석사과정에서는 현대음악 전문가인 가키누마 도시에 선생님께 지도를 받았습니다. 가키누마 선생님의 세미나 역시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음악 이론을 배울 수 있었고, 특히 시벨리우스의 회전 형식(Rotational form)에 관한 연구는 제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음악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박사과정 작곡 분야로 진학해 나카무라 노리코 선생님과 사카이 겐지 선생님께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나카무라 선생님께는 학부생 때부터 배워 왔으며, 그 영향은 일본의 지역성을 고려하는 지금의 제 작품 경향에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카이 선생님께는 박사과정에 입학한 뒤부터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지도는 작품 속 모든 요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카이 선생님의 지도는 제 작품에 부족했던 조각을 채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분 모두 제게 매우 큰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박사과정에서 작곡과 연구에 힘쓰고 있으며, 배울 것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같은 세대 작곡가들에 비해 다소 먼 길을 돌아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동안 배운 모든 것이 제 작품의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며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석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바꾸는 일은 얼핏 어려워 보이는데요. 작곡에서 음악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힘들었던 점과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음악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데 필요한 분야의 지식을 익히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보통 음악학 석사과정은 학부 때 미학과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뒤에 진학하지만, 저는 거의 작곡만 공부해 왔기 때문에 음악학에 필요한 지식을 새롭게 보충해야 했습니다. 결국 입학하기까지 일 년 더 준비하게 되었지만, 그때 얻은 지식은 현재 제 음악성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 작곡 지식이 음악학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음악학 전공으로 재학할 때는 연주회 해설을 자주 썼는데, 일본에서 아직 초연되지 않은 작품이나 연구 자료가 부족한 작품의 해설을 의뢰받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우 작곡 지식이 매우 유용해서, 직접 처음부터 작품을 분석하고 내용을 이해한 뒤 해설을 쓸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곡가의 작품 해설을 의뢰받았을 때는 자료가 전혀 없어 난감했지만, 어떻게든 글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폭넓게 배운 작곡 지식 덕분이었습니다.

—바르토크 국제 콩쿠르 작곡 부문을 비롯한 여러 콩쿠르에서 활약하고 계신데, 어떤 점을 염두에 두시나요?

저는 콩쿠르를 의식해 작품을 만드는 데 그다지 능숙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전체 구성과 작품에 사용할 이론을 미리 확실히 정하고 치밀하게 스케치해서, 콘셉트가 흔들리지 않도록 늘 신경 씁니다. 작품을 쓰다 보면 문득 좋은 프레이즈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작품의 균형을 생각했을 때 그것이 반드시 좋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치밀하게 스케치해 두면 나중에 작품을 다시 살펴볼 때 냉정하게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음에 드는 프레이즈를 버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카모토 씨의 작품에는 어떤 콘셉트가 주로 나타나나요?

어떤 것이 많다고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작품들의 음악 구조는 비슷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고향인 오카야마에서 바다와 산밖에 없는 듯한 농촌에 살고 있습니다. 간사이의 도시 지역을 떠나 십수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고향에 대한 인상이 크게 달라졌고, 자연의 풍요로움과 혹독함을 비롯한 다양한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계속 시골에서만 살았다면 의외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부분입니다. 도시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뒤 시골 특유의 느린 시간 흐름을 알게 되면서, 계절이 바뀔 때 나타나는 환경의 미세한 변화까지 눈여겨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콘셉트를 음악 구조에 반영하는 일이 점점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세시마 국제 작곡 강습회에 참여하고 미에현에서도 작품을 쓰고 계신데, 미에현의 음악 환경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미에현의 음악을 친숙하게 접해 왔습니다. 바로 이세 다이카구라의 사자춤입니다. 제가 사는 지역을 순회하는 전승 유파의 대표가 저희 집을 쉬어 가는 곳으로 삼고 있어서, 늘 춤을 좀 더 길게 보여 주십니다. 다이카구라의 춤과 반주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변함없이 즐기는 것 중 하나입니다.

미에현은 이세 다이카구라 같은 전통 공연 예술과 유서 깊은 이세 신궁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으며, 문화 보호에 깊은 이해를 보이는 곳입니다. 그런 미에현이 국제 작곡 강습회뿐 아니라 이세시마 국제 콩쿠르 등 음악 행사를 적극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문화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이런 행사들을 개최하기가 대단히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문화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미에현이기에 지금도 의미 깊은 행사를 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문화 행사를 기획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미에현에서 해 보고 싶은 음악 활동이 있나요?

미에현은 문화유산이 풍부한 지역이니, 그것들과 어떤 형태로든 협업하는 기획을 할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씀드린 다이카구라와의 협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대음악과 노를 결합한 공연 사례가 있듯이, 일본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은 친화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노와 다이카구라는 음악성과 연출이 완전히 달라 적절한 예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이처럼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새로운 협업은 탐구할 가치가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미에현의 민요를 염두에 둔 작품을 만드는 데도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현대음악과 지역성에 대해 생각해 왔으며, 현재 출신지인 오카야마현 남부의 민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각지에서 지역에 밀착한 예술제가 열리는 예술계의 흐름 속에서, 현대음악이 그 흐름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 의문을 품은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전승되어 온 지역 민요와 새로운 음악성을 탐구하는 현대음악이 공생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강조되는 요즘,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지향하는 음악을 그 음악의 주제가 되는 지역에서 발표하는 일이 오늘날의 예술 활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에현에는 이세 온도와 오와세부시 등 역사 깊은 민요가 있습니다. 이런 전통 민요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가까운 미래에 미에현에서 발표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요즘 문화 활동에서는 다양한 협업이 이루어지지만, 서로 잘 어우러지지 않아 어색한 조합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카모토 씨는 어떤 협업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색한 조합이 되는 원인으로는 참여자 사이의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나, 각자 자기 뜻을 지나치게 관철하려다 통일감을 잃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협업에서는 각자의 이상을 잘 융합할 필요가 있으며,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지 못한다면 이상적인 협업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작곡가 에리크 사티와 디자이너 샤를 마르탱의 협업 작품인 「스포츠와 기분 전환」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마르탱이 그린 풍속화에 사티가 곡을 붙인 일종의 화집 같은 것으로, 두 사람의 장점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멋진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협업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먼저 그린 그림에 나중에 곡을 붙였지만, 사티는 그림의 내용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어법에 따른 음악 작품을 덧붙였습니다. 발표된 지 백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거듭 재판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 작품이 얼마나 높이 평가받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프랑스 예술에서는 매우 뛰어난 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사티, 콕토, 피카소의 「파라드」나 풀랑크, 로랑생, 니진스카의 「암사슴」 등 그 사례는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많은 훌륭한 협업이 가능했던 데에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와 그가 이끈 발레 뤼스의 막대한 공헌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것은 예술가들이므로, 예술가 사이에 작품에 대한 인식의 엇갈림이 생기면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협업 작품들은 각 예술가가 서로를 존중한 결과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협업을 하려면 서로의 원칙과 주장을 정확히 이해한 뒤 치밀하게 계획하고 의견을 조율하며, 서로의 장점을 끌어낼 수 있도록 의식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지만,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우며 그리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각자의 능력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시각이 필요하고,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데 지나치게 힘을 쏟은 나머지 자신을 버린다면 협업의 의미가 없습니다. 협업은 어려운 시도이지만,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품고 있습니다. 가치 있는 협업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예술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다양한 예술가와 친분을 쌓아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오카모토 신스케 씨와의 인터뷰를 마칩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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